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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어릴 때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꽤 열심히 읽었는데, 홍은영 작가의 그림이 실린 18권 이후 작화가 바뀌면서 그냥 덮어버렸거든요. 그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가 화제가 되면서 뒤늦게 원작 이야기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중간에 끊어버린 그 이야기가 사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신화 정확성 — 재미있는 입문용이지만,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트로이 전쟁의 서사를 쉽게 풀어주는 콘텐츠들이 요즘 많아졌습니다. 파리스와 헬레네의 야반도주, 오디세우스의 트로이 목마 작전, 포세이돈의 분노로 이어지는 10년간의 귀향기. 듣다 보면 정말 드라마보다 재밌습니다. 저도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게 다 신화 속 이야기였어?" 하고 놀랐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직접 원전을 찾아보면서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많은 콘텐츠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가 트로이 전쟁 전체를 다루는 것처럼, 심지어 트로이 목마까지 포함된 것처럼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일리아스》란 트로이 전쟁 10년 중 마지막 해의 일부, 구체적으로는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그로 인한 전투 장면에 집중한 서사시를 말합니다. 트로이 목마 장면은 사실 《일리아스》에 직접 등장하지 않고, 후대의 서사시 《소(小) 일리아스》나 《일리우 페르시스》 같은 작품들에서 다뤄집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원문 구성을 살펴보니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가 분노해서 전장을 이탈하고, 결국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다시 나서는 장면까지를 집중적으로 그립니다. 방대한 전쟁 서사 전체를 압축한 작품이 아닌 거죠. 반면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 《오디세이아(Odysseia)》는 트로이 전쟁 이후 10년간의 항해를 따라가는 작품으로, 이 두 서사시는 각각 독립된 이야기입니다.
신화를 역사와 뒤섞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키클롭스(Cyclops), 즉 외눈박이 식인 거인과의 대결이나 세이렌(Siren)의 유혹 같은 장면들은 신화적 상상력의 영역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요소들을 실제 항해 중 경험했을 법한 자연 현상이나 심리적 시련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트로이 전쟁 자체의 역사적 실재 가능성은 고고학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논의되고 있지만(출처: Britannica, Trojan War), 신화 속 개별 에피소드를 역사적 사실과 동일선상에 두기는 어렵습니다.
재미로 들을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서 "오디세이가 이런 이야기야"라고 말하고 싶다면, 입문용 콘텐츠를 발판 삼아 원전이나 신뢰할 수 있는 학술 자료를 한 번쯤 들춰보는 게 좋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신화를 정확하게 알고 나서 영화를 보면, 놀란 감독이 어디를 비틀고 어디를 충실하게 따랐는지가 훨씬 또렷하게 보이거든요.
- 《일리아스》: 트로이 전쟁 10년 중 마지막 해 일부를 다룬 서사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중심 주제
- 《오디세이아》: 트로이 전쟁 종전 이후 오디세우스의 10년 귀향을 다룬 서사시. 호메로스 작
- 트로이 목마 에피소드: 《일리아스》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으며, 후대 서사시들에서 다뤄짐
- 키클롭스, 세이렌 등의 에피소드: 신화적 상상력의 영역. 실제 항해 경험의 문학적 형상화라는 해석도 존재
귀향 서사 — 오디세우스만큼 페넬로페도 싸우고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사실 바다 위의 모험이 아니었습니다. 이타카에 남겨진 페넬로페(Penelope)가 수의를 낮에 짜고 밤에 다시 풀면서 3년 넘게 구혼자들을 따돌렸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이걸 처음 알았을 때 진짜로 "아, 이 사람도 만만치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페넬로페의 이 작전을 가리켜 흔히 '페넬로페의 직조(Penelope's Web)'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 표현이란 끝없이 반복되는 지연 전술, 즉 결론을 계속 미루는 행위를 상징하는 문학적 모티프를 의미합니다. 서양 고전 문학에서 지혜롭고 현명한 여성 캐릭터의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출처: World History Encyclopedia, Penelope).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us)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흥미롭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왕국에서 귀족들에게 무시당하며 자랐지만, 멘토르(Mentor)라는 조언자를 만나면서 성장합니다. 여기서 멘토르란 아테나 여신이 노인으로 변신한 인물로, 현대어 '멘토(mentor)'의 어원이 된 이름입니다. 한 단어가 신화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단어를 쓸 때마다 괜히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오디세우스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의 여신 칼립소(Calypso)의 섬에서 7년을 보낸 장면은 단순한 억류가 아닙니다. 불사의 삶과 낙원을 내놓는 여신 앞에서도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이타카를 선택합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장면이 오히려 오디세우스가 진짜 귀향을 원한다는 가장 강렬한 증거라고 봅니다. 신들의 토론에서도 동정 여론이 일어날 만큼, 오디세우스는 단지 운이 나쁜 게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를 맷 데이먼이, 페넬로페를 앤 해서웨이가, 텔레마코스를 톰 홀랜드가 연기합니다. 배역이 공개됐을 때 맷 데이먼이 또 집에 못 가는 역할을 맡았다는 밈이 빠르게 퍼졌는데, 제 경험상 이런 밈이 생길 때가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운 순간입니다. 북미 사전 예매 오픈 당일 하루 만에 340만 달러(약 5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같은 이야기인가요?
A. 둘 다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지만 내용은 다릅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중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의 10년 귀향을 다룹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두 작품은 배경과 주인공이 다른 별개의 서사시입니다.
Q. 트로이 목마는 《일리아스》에 나오나요?
A.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트로이 목마 에피소드는 《일리아스》가 아니라 후대에 쓰인 서사시들, 예를 들어 《소 일리아스》나 《일리우 페르시스》에서 다뤄집니다. 입문용 콘텐츠에서 이 부분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Q. '멘토'라는 단어가 신화에서 왔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아테나 여신이 변신한 노인 멘토르(Mentor)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텔레마코스에게 조언을 주며 성장을 이끌었던 인물로, 현대에서 '경험 있는 조언자'를 뜻하는 멘토라는 단어의 어원이 됩니다.
Q.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는 원작 신화와 얼마나 다른가요?
A. 아직 영화가 개봉 전이라 전체 내용을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처럼 알려진 이야기에 독창적인 시선과 연출을 더하는 방식을 즐깁니다. 원전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영화를 보면, 어느 장면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생깁니다.
결론
어릴 때 중간에 덮어버린 책이 이렇게 커다란 이야기였다는 걸, 성인이 된 뒤에야 알았습니다. 입문용 콘텐츠 덕분에 다시 흥미가 생긴 건 좋은 일입니다. 다만 신화 정확성 측면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범위를 구분하고, 신화와 역사적 해석이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면,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볼 때 전혀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깁니다.
페넬로페의 직조 전술이 3년을 버텼다는 것, 오디세우스가 신들의 토론 끝에 겨우 귀환 허락을 받았다는 것, 멘토르라는 이름이 지금도 우리 언어 속에 살아 있다는 것. 이런 디테일들을 알고 나서 스크린을 마주하면, 신화가 단순한 옛날이야기로만 보이지 않을 겁니다. 개봉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원전을 조금씩 들여다보는 것, 저는 그걸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