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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둠스데이》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습니다. 보자마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강력한 빌런이 나온다는 것보다, 그 빌런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를 먼저 설명하는 예고편이라니. 예전 마블이 그리웠던 분이라면, 저처럼 이번 예고편에서 뭔가 다른 공기를 느끼셨을 겁니다.
빌런 서사가 완전히 뒤집혔다 — 닥터 둠의 등장 방식
마블 영화를 오래 봐온 분들이라면 빌런 서사(villain narrative)의 공식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빌런 서사란 관객이 악당을 먼저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후 그의 과거와 동기를 알게 되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하는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타노스가 대표적이었죠. 《인피니티 워》에서 우주의 절반을 없애겠다는 섬뜩한 논리로 먼저 공포를 심은 뒤, 그의 고향 타이탄 이야기를 통해 사연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둠스데이》 예고편은 그 순서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제가 직접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들은 건 수(수 스톰)의 목소리였습니다. "빅터는 늘 어디서든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따뜻한 사람이었고, 남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던 모든 걸 빼앗겼다." 이 대사가 예고편의 첫 문장입니다. 무섭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먼저 불쌍하다는 감정을 심어버리는 거죠.
닥터 둠의 본명은 빅터 폰 둠(Victor von Doom)입니다. MCU는 이번 작품에서 빅터와 수가 같은 지구에 살며 서로 알던 사이라는 설정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원작 코믹스에는 없던 설정입니다. 원작에서 둠과 리드 리처즈는 대학교 동기였고, 수와의 직접적인 과거 관계는 없었거든요. 즉 MCU는 빅터를 리드만의 적이 아니라 수와도 감정적으로 얽힌 존재로 만들어, 관객이 그를 처음부터 인간으로 느끼도록 설계한 겁니다.
예고편 후반부에서 둠은 토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옥은 나에게 복종한다." 그러고는 손가락 두 개로 묠니르를 막아버립니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건 화력 과시 때문이 아니라, 직전까지 가족을 잃은 사연을 들려준 사람이 이런 힘을 쓴다는 대비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관객이 무의식적으로 빌런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나서야 그 힘을 직면하게 만드는, 굉장히 영리한 연출입니다.
- 기존 빌런 공식: 공포 선제 노출 → 이후 사연 공개
- 둠스데이 공식: 사연 선제 공개 → 이후 압도적 힘 노출
- MCU 오리지널 설정: 빅터 폰 둠과 수의 과거 관계 추가
- 원작 코믹스 기반: 리드 리처즈와 빅터는 대학 동기 설정 유지
히어로도 완전히 옳지 않다 — 닥터 둠의 논리와 프랭클린의 존재
제가 이번 예고편을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둠의 한 마디였습니다. "너희 모두는 훔친 삶을 살아왔다. 이제 돌려줘야 한다." 처음엔 그냥 빌런의 명대사처럼 들렸는데, 곱씹을수록 이 말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반박하기 어려웠습니다.
MCU의 멀티버스 설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커전(Incurs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인커전이란 두 개의 평행 우주가 충돌하면서 하나 혹은 둘 모두가 파괴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히어로들의 활동이 이 충돌의 원인이 된다는 설정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출처: Marvel 공식)에서 이미 다뤄진 바 있습니다. 즉 히어로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혹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멀티버스를 오간 행위가 다른 우주를 위태롭게 만들었을 수 있다는 거죠. 둠의 논리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봤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울트론이 틀렸다"고 단정 짓기가 은근히 어려웠거든요.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할 가능성에 대한 울트론의 논리는 황당하면서도 일부는 납득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둠은 그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상처에서 출발한다는 게 차이입니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사람이 "훔친 삶을 돌려놓겠다"고 할 때, 우리는 그를 단순 악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여기서 프랭클린 리처즈(Franklin Richards)의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프랭클린은 리드와 수의 아들로, 원작 코믹스에서 우주를 통째로 새로 창조할 수 있는 수준의 뮤턴트(Mutant)로 묘사됩니다. 뮤턴트란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초월적 능력을 타고난 존재를 의미하며, X-맨의 구성원 대부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프랭클린의 능력은 그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데, 죽은 존재를 되살리거나 붕괴된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Marvel 공식 캐릭터 페이지). 가족을 잃은 빅터 폰 둠 입장에서, 이 능력은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열쇠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의 구도가 둠이 히어로들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프랭클린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객은 계속 질문을 받게 될 겁니다. 저처럼 마블을 오래 봐온 사람도 "둠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가 이번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닥터 둠이 원작에서도 이렇게 사연 있는 캐릭터인가요?
A. 네, 원작 코믹스에서도 빅터 폰 둠은 단순한 악당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잃고 나라를 지키려는 왕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며, 자신만의 논리와 명예를 가진 복잡한 캐릭터로 오랫동안 묘사되어 왔습니다. MCU는 여기에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라는 새로운 동기를 더해 감정적 접점을 더 넓혔습니다.
Q. 인커전이 뭔지 모르면 둠스데이를 이해하기 어렵나요?
A. 인커전 개념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시크릿 인베이전》 등에서 조금씩 언급됐지만, 몰라도 영화 자체를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둠의 "훔친 삶" 발언이 왜 설득력 있게 들리는지를 제대로 느끼려면, 멀티버스 이동이 다른 우주에 피해를 준다는 기본 설정을 알아두면 훨씬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Q. 프랭클린 리처즈가 이번 영화에서 핵심 열쇠가 되는 이유가 뭔가요?
A. 프랭클린은 원작에서 우주 하나를 통째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뮤턴트입니다. 가족을 잃은 둠 입장에서 이 능력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어로들을 제압하는 것과 함께 프랭클린을 확보하는 것이 둠의 진짜 목표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Q. 이번 예고편에서 둠은 타노스보다 강한 건가요?
A. 예고편만 보면 그렇게 느껴지도록 연출됐습니다. 토르의 공격을 손가락 두 개로 막고 마법 한 방에 날려버리는 장면은, 타노스의 등장 방식보다 훨씬 여유롭고 압도적으로 보입니다. 물론 영화 본편에서 어떻게 그려질지가 진짜 기준이겠지만, 적어도 마블이 의도적으로 타노스 이상의 급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결론
《둠스데이》 예고편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마블에 바라던 게 정확히 이거였거든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 히어로가 완전한 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물음. 그걸 영화 상영 내내 관객에게 던지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영화 하나 보겠다고 이렇게 인커전이니 프랭클린이니 코믹스 설정까지 파고들고 있자니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전교 1등은 밥 먹듯이 했겠다 싶었거든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파고들게 만드는 것 자체가 지금 마블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개봉이 기다려집니다.